일상을 스케치하다/소소한 일상

의도적인 우연

초록소리 2017. 11. 23. 00:13




여긴 왜 왔어?


노틀담복지관 갔다가 집에가는 길에 들렀어요.


그런데 할머닌 뭐하세요, 이 추운 날씨에.


응 나는 배추 심어 놓은 것 얼까봐 덮으러 왔어.


김장 아직 안 하셨어요?


했지, 근데 우리 배추는 속이 안 차서 김장감이 못 돼서 그냥 둬서. 내년 봄에 봄동으로 먹으려고.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하다가 봄 되면 봄동으로 먹으면 맛있거든. 근데 여긴 왜 왔수?


예전 많이 왔던 곳인데 길이 예뻐서 왔어요.


이쁘지, 여기 벚꽃 피어봐 얼마나 이쁜지 몰라. 여름에도 예쁘고 가을에도 예쁜데 저기 산 보이지 저기 단풍 들면 얼마나 이쁜지 몰라.

그리고 겨울에는 더 예뻐. 눈이 하얗게 내려 앉으면 정말 예쁘니까. 겨울에도 와 봐.


할머니 되게 낭만적이시다. 겨울에 여기 왜 오셨어요? 밭에 할 일도 없는데?


그냥 가끔 와.  아참 그리고 얼마 전에는 저 길에서 영화도 찍었어. 오토바이 타는 장면. 근데 오토바이 타는 척만 하고 달리지는 않았어. 여기 길이 차가 많이 안 다니잖아. 그래서 여기서 찍은 거야.


그곳에 다닌 이래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기는 처음이었다.

농사철이면 그곳에 항상 사람이 있었지만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봤는데 그날은 할머니와 먼저 말을 걸어와 한참 이야기를 했다.

작은 움막에서 가끔 라면도 끓여드신단다. 눈 내리는 날 가면 어쩌면 그 할머니에게 라면도 얻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.


그날 그곳에서 작은 이야기 꺼리 하나를 챙겨서 돌와왔다.

소설적 구상을 해 본다.

전기도 안 들어오는 할머니의 작은 움막이 소설속 무대.

재미있는 소설이 될 것 같다.


복지관에서 들은 수녀님 이야기도 너무 감동받아 "이건 꼭 글로 쓸 거야!" 다짐했다.

수녀님이 들려준 이야기는 옛날 모델의 모나미 볼펜 153 에 관한 이야기다.

이 글 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먼저 들뜬다.


이 일이 지난주 일이니까 어쩌면 첫눈 온 날도 그곳은 아름다웠을 것 같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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